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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2 [Tour] 일본 규슈 여행 (3) 미야자키(宮崎) (2)
  2. 2007/08/11 [Tour] 일본 규슈 여행 (2) 가고시마(鹿兒島) (4)


남규슈의 마지막 여행지는 미야자키 였다.


옛 일본 지명으로는 이곳을 휴가(日向) 라 불렸고, 메이지 유신 이후 미야자키 현(宮崎懸) 이 된다. 일찌기 개항하여 외국의 선진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여 발전한 나가사키, 가고시마에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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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야자키는 진짜 볼 것 없다고 먼저 놀러갔던 친구가 비추를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괜찮았다. 무엇보다 바다가 아름답고, 곳곳에 자라고 있는 피닉스 야자수와 소철 나무가 주는 이국적이 느낌이 매우 좋았다.


여기는 우도신궁(鶿戶神宮) 이다. 미야자키 해안 도로를 타고 가다가 들렀는데, 해안가에 있어서 그런지 나름 운치가 있고 멋지다. 일본 천황가에 오랫동안 아들이 태어나지 않고 딸만 있는 상태가 계속되어 여자를 천황으로 옹립할 수 있다는 법안을 추진하려던 차에 천황의 둘째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다. (일본 천황가에서 40 여년만의 득남이라고 한다) 바로 이곳 우도신궁에서 기도를 한 후에 아이를 가졌다 해서 이후 많은 젊은 부부들이 찾는다고 한다. ;)

모방의 천재, 일본인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 것이 바로 선메세니치난(Sun Messe 日南, 일본식 엉터리 영어와 日南이란 지명을 섞어 만든 괴상한 이름... ㅋㅋ) 공원을 방문하고 나서이다.

이곳이 바로 전세계에서 유일무이?? 하게 칠레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의 복제본이 있는 곳이라 한다.

이스터 섬은 1722년, 부활절(easter) 에 발견되어 이스터 섬이라 명명 되었는데 발견된 당시에 섬 전역에 수도없이 많은 거대 석상이 섬 전체에 있었다. 섬의 원주민들이 원시기술만 가지고 이런 수많은 모아이 석상을 만든 것이 불가사의 해서 얼마전에 있었던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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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섬은 계속되는 부족간의 전쟁으로 황폐해져 수 많은 모아이 석상들이 쓰러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최근 일본의 한 중공업회사가 기중기를 이용해 쓰러진 모아이들을 세워서 복원하는 작업을 해줬단다. 이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이스터 섬의 부족장들이 미야자키에 모아이 석상의 복제품을 만드는 것을 허락해서 여기에 이렇게 모아이 석상이 세워지게 된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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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모아이는 바다를 등지고 육지를 향해 서 있다. 예전에 모아이에 관해 다룬 sbs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 이유가 설명되었는데, 태평양의 고립무원의 이스터 섬 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이 살고있던 그 조그만 섬이 자신들의 세상의 전부였고, 바다 바깥의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다 바깥을 향하지 않고 육지를 향해서 모아이 석상들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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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바닷의 풍경은 정말 멋졌다. 말 그대로 포카리스웨트의 광고의 한장면에 나올듯한 풍경이었다.


미야자키의 시내 풍경. 저 멀리 보이는 하얀 돔은 바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훈련 캠프라 한다. 겨울마다 이곳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전지훈련을 한다는데, 훈련캠프로 저렇게 돔 구장을 세우는 프로야구 인프라가 부러워진다.. 물론 가까이서 보니 그렇게 크지는 않은 미니돔이긴 하지만.

미야자키를 끝으로 일본 여행도 마무리가 되었다. 규슈는 역시 날씨가 덥고 습해서 여름보다는 가을이나 겨울에 오면 참 좋을 것 같다. 규슈 지방은 예전에 갔던 오사카, 도쿄와 같은 혼슈(本州) 와는 달리 차분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편안하게 쉬어가는 여행지로 적격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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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yperdash 2007/08/15 0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은 일본인데 많이 다른 느낌인데??

    • BlogIcon soyoja 2007/08/17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야자키는 제주도하고 왠지 비슷하더라..
      하지만 역시 위도가 더 낮아서 그런지 제주도 보다는 좀더 이국적이고 아열대 분위기가 많이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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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를 거쳐 다음으로 구경간 곳은 가고시마 현(鹿縣) 이었다.

일본 전국시대 당시에는 사츠마(薩摩) 와 오오스미(大隅) 2개 국(國) 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메이지 유신 당시 폐번치현(廢藩置縣; 지방 분국을 번 단위에서 현 단위로 함 ) 을 하면서 사츠마(薩摩)와 오오스미(大隅)를 합쳐 가고시마 현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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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현 - 왼쪽이 사츠마 반도, 오른쪽이 오오스미 반도 이며 이 두 반도의 사이에 있는 섬이 활화산 섬인 사쿠라지마(櫻島)

가고시마 시내 전경.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바로 가고시마의 상징인 활화산 사쿠라지마(櫻島) 이다. 200 년에 한번꼴로 대규모 폭팔을 하는데, 지금도 연기를 내뿜고 있다.

가고시마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용맹스러운 사츠마 무사 들이다.
일본 최 남단에 위치한 사츠마 지방은 예로부터 사무라이 들이 용맹스럽기로 소문난 지방으로, 전국시대 당시에는 이곳의 영주였던 시마즈(島津) 가문이 규슈 전토 통일을 눈앞에 두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항복했던 역사가 있었고, 메이지 유신때는 사츠마 출신의 많은 유신지사들을 배출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아주 어이가 없는 이론인 정한론(征韓論; 일본이 발전하려면 한국을 정복해야 한다는 이론) 의 주창자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고향이기도 하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메이지 유신삼걸(維新三傑) 중 한명..)

메이지 유신 이후 유신의 주역이던 사츠마 출신의 많은 유신지사들이 정계로 진출하였다. 이는 지금도 전통으로 이어져오고 있어,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집안을 비롯하여 많은 일본의 정치인들을 배출한 곳이 바로 이곳 가고시마 이다.
그래서 그런지 만화 정치9단의 주인공 카지 류우스케의 고향도 가고시마로 설정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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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 류우스케는 의문사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향 가고시마에서 출마하여 당선, 정치인생을 시작한다.

가고시마의 남쪽에 있는 치란(知覽) 이라는 마을에 갔다. 원래는 치란의 교토라 불리우는 사무라이 마을을 보러 간 것인데, 가는 도중에 생각지도 않은 것을 보게 되었다.
치란이 바로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 항공기지가 있던 곳이란다. 여기에 바로 치란 평화공원이라고, 가미가제 특공대를 추모하는 공원이 있었다.

이른바 평화공원 주변에는 수백개가 넘는 석탑이 있다. 이게 뭐냐하면 가미가제 특공대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일본 전국의 기부자들이 낸 헌금으로 만든 석탑들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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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최근 만들고 있는 가미가제 특공대를 주제로 한 영화 "우리는 당신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 소설가이자 극우 정치인인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라는 자가 각본을 썼다.

가미가제 특공대(神風特攻隊)는 태평양 전쟁 말기, 패색이 짙어진 일본이 전세를 뒤집기 위해 250 Kg 의 폭약을 실은 비행기로 미군 군함에 자폭하는 세계 전사상 유래가 없는 전술이었다. 폭약을 적재한 비행기를 직접 조종해서 군함에 들이받기 떄문에 일반 폭격에 비해 정확도가 훨씬 높고 효과가 좋다고 판단한 일본 대본영은, 초기에는 약 300 명의 가미가제 특공대만 투입하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다.

대본영에서는 가미가제 특공대원을 대단히 명예롭게 치켜세운지라 자원하는 조종사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가미가제 특공대가 군함에 급강하 하는 순간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조종사들이 핸들을 꺽거나 머뭇거리다가 제대로 군함을 향해 돌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10대중 9대 꼴로 대공포에 맞아 파괴되거나 바다에 쳐박혀서 큰 효과가 없었다 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집착과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 가미가제 특공작전은 이렇게 실패로 끝난다.

마침 내가 일본을 방문했던 8월 6일은 히로시마 원폭투하일로 일본 TV 에서 원폭희생자 인터뷰등과 같은 특집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애초에 전쟁을 일으킨 잘못은 반성하지 않고, 평화공원만 지어놓고 특공대원을 추모하는 모습들을 보자니 아직 일본인들은 정신 못차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정신 못차리고 있는 얼빠진 일본인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치란의 교토, 사무라이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민속촌 쯤 되나... 옛날 무사들의 집안과 정원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곳이 치란의 거리이다. 매우 깔끔하고 잘 정돈된 거리가 인상적이다.

놀랍게도 도로에 있는 도랑에 커다란 잉어들이 살고 있다. 물론 강에서 잡아와서 여기다 방류한 것이겠지만...

치란의 사무라이 마을이다. 돌담길이 인상적인데, 여기엔 도마뱀도 있었다 -_-


이런 일본 정원들을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느긋하게 감상하면 정말 좋겠는데, 이날 날씨가 32 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라서 편안하게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

 치란은 잘 정돈된 거리와 예전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차분하게 감상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가고시마는 일본에서도 농축산업 비율이 가장 높은 지방 중 하나다. 이곳의 명물이 바로 화우(和牛, 와규) 라 불리우는 일본 전통 소고기인데 - 우리식으로 말하면 한우 쯤 될까 - 저녁은 고깃집에 가서 맛있게 고기를 구워 먹었다. 한국의 갈비가 일본에서도 인기 있다더니, 갈비살을 저렇게 한국식으로 내놓았다.


사쿠라지마 에서 본 가고시마 시의 모습.

가고시마는 시골도시였지만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한편, 이곳에서 가미가제 특공대 추모공원도 보고, 여기서 영웅대접을 받는 정한론의 주창자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상과 사진도 수없이 보면서 일본에 대한 반감도 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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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yperdash 2007/08/15 0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옷 갈비... 산내골에 먹던 갈비가 생각나는군 ㅎㅎ

    가고시마 시는 동해랑 느낌이 조금 비슷하군..

    • BlogIcon soyoja 2007/08/17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사진으로는 느낌이 덜 오는데 활화산이 있어서 우리나라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더군...
      저 소고기 구이는 일본에서 먹은 음식 중 젤 맛있었다.. ;)

  2. rainystar 2007/12/27 1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여행정보 서비스를 운영하려는 사람인데요...사진이 많이 필요하네요. soyoja님의 블로그에 있는 치란 사무라이 마을관련 사진이 본인소유의 사진이시면 구매하고 싶습니다. 1장당 500원에 구매하려고 하는데요. 가능하시면 ydkim108@gmail.com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제가 가진 00 장소에 대한 사진 관련 답메일입니다."라고 메일 보낼 때 메일 내용에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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